조선시대 양반들도 회를 먹었을까 낚시파티와 회 문화의 비밀
인천에서 회를 먹으러 갈때 가끔 연안부두나 소래포글 갔다오는데 이번에는 직접 회를 먹으면서 궁금증이 생겼네요. 과연 조선시대 양반들이 회를 어떻게해서 먹게되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고양이처럼 생선을 사랑하고 횟집의 푸짐한 밑반찬과 기다릴 필요 없는 간편함 덕분에 회를 즐겨 찾는 이들이 많습니다. 일본이 해산물과 초밥으로 유명해 회 문화의 원조처럼 느껴지지만, 기록을 살펴보면 한중일 3국 중 일본이 가장 늦게 회를 먹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인의 유독 특별한 회 사랑의 역사와 조선시대의 흥미진진한 횟문화를 파헤쳐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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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양반들도 회를 먹었을까 |
1. 한중일 회의 역사: 고려시대부터 시작된 한국의 회 사랑
생선회에 관한 세계 최초의 기록은 기원전 9세기 중국 주나라 무덤에서 출토된 '해가반'이라는 그릇에 구운 자라와 생선회로 잔치를 베풀었다는 내용입니다. 반면 일본 문헌에 생선회인 '사시미'가 등장하는 것은 1399년으로 훨씬 나중의 일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려 중기의 학자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 "회를 안주 삼아 먹다 보니 술에 흠뻑 취했다. 안주가 모자라면 고기를 잡아 회를 만들어 먹으면 된다"라는 시가 실려 있을 정도로 고려시대부터 회를 즐겨 먹었습니다.
2. 조선시대의 독특한 회 먹방과 정조의 낚시 파티
조선시대의 회 먹는 방법은 지금과 달라서, 두껍게 썰기보다는 가늘게 채를 썰거나 얇게 포를 떠서 먹는 것이 대세였습니다. 심지어 겨울철에는 물고기를 잡아 눈 위에 두어 자동 냉동시킨 뒤 나뭇잎처럼 얇게 썰어 먹기도 했습니다. 당시에는 고추가 보급되기 전이라 복잡한 과정을 거쳐 만든 겨자장을 곁들였는데, 너무 많이 먹으면 재채기를 한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매운맛에 대한 열정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궁중에서는 한강 하류의 '위어소'를 통해 임금께 진상할 은색의 웅어(위어)를 잡았고 주변에 상인들이 몰려들어 횟장이 형성되기도 했습니다. 일반 백성이나 양반들은 냉장고가 없던 시절이라 회를 먹기 쉽지 않았는데, 정조는 창덕궁 앞마당 부용정 연못에서 신하들과 대규모 낚시 파티인 '상화조어'를 열어 직접 잡은 물고기로 회를 즐기기도 했습니다. 정약용은 정조가 주는 술을 억지로 마시고 쓰러졌던 기억을 남기면서도, 오리가 먹다 버린 죽은 생선을 건져내어 회를 떠먹을 정도로 회에 진심이었습니다.
3. 민물고기 회의 부작용과 기생충의 추억
맛있는 음식에는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18~19세기 조선시대 미라 18구를 연구한 결과, 간흡충과 폐흡충(간디스토마) 같은 기생충 감염률이 27.8%에 달했습니다. 승정원일기나 연암집 등을 보면 양반들을 포함해 생굴, 민물게, 가제 등 어패류와 갑각류를 익히지 않고 날것으로 즐겨 먹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행히 현대에는 위생 환경이 개선되어 기생충 감염률이 2% 미만으로 떨어졌습니다. 덕분에 마음 놓고 회 파티를 즐길 수 있게 되었고, 구워 먹고 튀겨 먹는 식문화까지 더해져 2022년 기준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연간 수산물 소비량은 63.3kg으로 세계 평균의 3배가 넘는 수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4. 대중화된 국민 횟감 광어의 비결
현재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횟감 1위는 광어, 2위는 참돔, 3위는 우럭입니다. 조선시대에도 광어(좌반어)는 궁중요리에 오를 만큼 귀하고 인기 있는 식재료였습니다.
하지만 과거에는 자연산 위주여서 가격이 매우 비싼 고급 횟감이었으나, 1980년대 이후 양식 기술이 본격적으로 성공하고 대중화되면서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국민 횟감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