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들은 무엇을 먹었을까? 수라상 뒤에 숨겨진 왕들의 식생활과 역사 비밀

집에서 내가 직접 늘 먹는 음식!!  과연 우리집에서 왕들이 먹는 음식들이 존재할까요?

외식을 하러 길거리를 걷다 보면 왕이 먹었던 음식을 재현했다며 상다리가 부러지게 많은 메뉴를 내어놓는 식당들을 종종 마주하게 됩니다. 하지만 조선의 왕이 먹방 유튜버가 아닌 이상 그 많은 음식을 혼자 다 먹었을 리 없겠죠. 실제 조선 왕들의 밥상 문화와 그 뒤에 숨겨진 흥미로운 역사적 이야기들을 파헤쳐 보겠습니다.

왕들은 무엇을 먹었을까?  수라상 뒤에 숨겨진 왕들의 식생활과 역사 비밀

1. 수라상의 진실: 500여 명의 인원과 하루 다섯 끼의 식사

궁중에서 왕에게 올리는 밥상을 '수라상'이라고 합니다. 전국 각지에서 진상된 토산물은 사옹원에서 관리했고, 소주방(생물방, 내·외소주방)과 수랏간을 거쳐 밥상이 차려졌습니다. 흔히 수랏간 하면 드라마 속 궁녀들이 떠오르지만, 조선시대 궁궐에서 요리를 전담하던 실무자들은 대부분 남성 요리사인 '숙수'였습니다. 왕과 왕비의 식사뿐만 아니라 각종 제사와 연회까지 담당하다 보니 음식 관련 인원만 500여 명에 달했습니다.

왕은 하루에 무려 5번의 식사(초조반, 조수라, 낮거상, 석수라, 야참)를 챙겨 먹었습니다. 이 중 아침과 저녁 메인 식사인 조수사와 석수라에는 대원반, 소원반, 책상반 등 총 3개의 상이 차려졌으며, 왕은 반찬 상태를 보며 해당 지역의 경작 상황을 가늠하고 민생을 살피는 정치적 행위로 삼기도 했습니다.

2. 고기에 진심이었던 세종대왕과 '잡채 판서' 광해군

성군으로 꼽히는 세종대왕은 알려진 대식가이자 미식가였습니다. 특히 '고기 없이는 식사를 못 한다'고 할 정도로 육류를 사랑해, 태종의 유언에도 "세종은 고기가 아니면 식사를 못 하니 상 중에도 고기를 들게 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을 정도였습니다. 실제로 태종 상을 치르며 고기를 먹지 않다 두 달 만에 허손병에 걸리자 신하들이 나서서 고기를 먹어달라고 간청하기도 했습니다.

광해군은 남다른 '잡채 사랑'으로 유명했습니다. 다만 이때의 잡채는 현대처럼 당면이 들어간 형태가 아니라, 다양한 채소 베이스에 고기를 함께 볶아낸 요리였습니다. 신하 이충이 바친 잡채에 푹 빠져 아침저녁으로 챙겨 먹었고, 잡채가 늦어지면 식사를 거부할 정도였습니다. 결국 이충은 능력과 무관하게 고위직인 호조판서까지 올랐고, 세간에서는 그를 '잡채 판서'라고 조롱하며 풍자하기도 했습니다.

3. 정치적 무기로 밥상을 이용한 영조와 애주가 정조

조선 역사상 가장 장수한 왕인 영조는 재위 기간 동안 반찬 수를 줄이는 '감선'을 89회, 아예 밥을 굶어 버리는 '각선'을 10번 넘게 감행했습니다. 이는 신하들과의 기싸움이자 신권을 견제하기 위한 고도의 정치적 전략이었습니다. 스스로는 백미를 멀리하고 잡곡밥 위주로 소식하며 건강을 철저히 관리했습니다.

반면 손자인 정조는 사치스러운 음식을 경계하고 진상을 줄였으나, 남다른 애주가였습니다. 책 한 권을 다 읽으면 신하들을 불러 모아 '책 읽는 술잔치(책도시)'를 열었는데, 정조는 취하지 않는 자는 집으로 돌려보내지 않는다는 '불취무귀(不醉無歸)'의 원칙을 고수했습니다. 다산 정약용이 옥필통에 가득 담긴 술을 마시고 "오늘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고할 정도로 술자리가 거칠기로 유명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상을 두고도 나라를 걱정하며 치열하게 살아야 했던 조선 왕들의 숙명은 아이러니하면서도 씁쓸함을 남깁니다. 오늘 맛있는 식사를 하시는 구독자 여러분도 눈앞에 놓인 밥상만큼은 걱정 없이 온전히 즐겨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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