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음식은 왜 맛이 없을까? 대영제국이 만든 최악의 요리와 피시 앤 칩스의 비밀

영국보다 맛있는 음식과 식재료를 찾다가 대영제국이 만들어졌다는 유머가 있을 정도로 영국 음식은 오래전부터 악평을 받아왔습니다. 세계적인 셰프 고든 램지나 제이미 올리버가 영국 출신이긴 하지만 정작 이들은 프랑스와 이탈리아 요리 전문가입니다. 강대국이 되면 미식도 함께 발전하기 마련인데, 유독 영국 음식만 암흑기를 걷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1. 열악한 기후와 귀족들의 고기 중심 식문화

우선 영국은 연중 비가 내려 일조량이 적고 기온이 낮아 농작물 재배가 어려웠습니다. 채소도 10가지 이내였고 밀 품종이 좋지 않아 빵 맛도 떨어졌습니다. 여기에 섬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생선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바다 자원을 멀리했습니다.

또한 목축업이 일치감치 발전하여 소고기가 너무 흔하다 보니 귀족들은 굳이 다양한 요리를 개발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몸통 부위만 구워 먹고 내장이나 뼈를 활용하지 않는 단조로운 식문화를 유지해, 카사노바를 비롯한 방문객들로부터 "어떻게 이런 음식을 먹는지 대단하다"는 조롱을 받기도 했습니다. 빅토리아 시대에는 아이들에게 말라비틀어진 빵과 감자를 주는 것이 교과서였고, 감리교 창시자 존 웨슬리는 "아이들의 악한 본성을 죽이기 위해 좋은 음식을 주면 안 된다"고 가르칠 정도로 맛에 무감각한 풍조가 만연했습니다.

2. 청교도 혁명과 산업혁명이 안긴 결정타

이러한 환경에 결정적인 타격을 준 것은 청교도 혁명과 산업혁명이었습니다. 17세기 올버 크롬웰이 이끈 청교도 정권은 극단적인 금욕주의를 내세우며 극장, 술집뿐만 아니라 맛을 즐기는 것조차 향락이자 죄악으로 여겨 요리사를 범죄자 취급했습니다. 독일, 네덜란드, 핀란드 등 음식이 맛없기로 소문난 나라들 역시 개신교 국가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어 18세기 산업혁명으로 농부들이 대거 도시로 몰려들어 저임금 노동자가 되었습니다. 하루 14시간 이상의 고된 노동에 시달리며 집안에 부엌조차 없거나 땔감을 살 엄두도 못 냈던 노동자들에게는 정성스러운 전통 요리가 들어갈 자리가 없었습니다. 상류층마저 프랑스와 이탈리아 요리를 찾으면서 영국 전통 요리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습니다.

3. 노동자의 구원투수, 피시 앤 칩스의 탄생

이 기나긴 암흑기 속에서 도시 노동자들을 지탱해 준 국민 음식이 바로 피시 앤 칩스입니다. 유대 이주민이 전한 생선튀김과 북서부 랭커셔 주의 감자튀김이 결합하여 탄생한 이 요리는 목화 재배 후 남아돌던 저렴한 면실유를 활용해 튀겨낼 수 있었고, 칼로리가 높아 노동자들의 허기를 달래기에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여기에 16세기 중반부터 이어져 온 '금요일에는 고기를 먹지 않고 생선을 먹는' 종교적 풍습까지 겹치면서 피시 앤 칩스는 전국적인 대중 음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작가 조지 오웰은 피시 앤 칩스가 종교적 억압과 혹독한 산업혁명의 삶 속에서 영국인들을 견디게 해 준 구원투수였다고 평하기도 했습니다. 오늘날에도 거물 스타들의 결혼식 피로연에 등장할 정도로 국민적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4.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 가져온 외식업의 변화

그렇다고 영국에 먹을 게 피시 앤 칩스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하면서 세계 각국의 맛있는 요리를 자국으로 적극적으로 들여왔습니다.

현재 영국 전역에는 전통 영국 식당을 찾기 힘들어도 태국, 인도, 중국, 베트남, 프랑스, 이탈리아 등의 다채로운 맛집들이 지천에 널려 있습니다. 마치 자국 음식에 보복이라도 하듯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온 맛있고 저렴한 이국 요리들이 외식 산업을 점령하면서, 역설적으로 영국 전통 요리사들이 설 자리를 잃게 된 것이 오늘날 영국 음식 문화의 또 다른 자화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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